디자이너는 전주기를 본다
나는 좋은 디자이너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본다.
한 영역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 전 영역에서 고루 80점 이상을 줄 수 있는 사람.
왜 이렇게 보게 됐는지, 어떤 의미인지 풀어보려 한다.
한 영역의 100점보다 전반적 80점
채용 시장에서 자주 보이는 평가 기준이 있다. UI를 잘 만드는가, Figma를 잘 다루는가, 코딩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가. 이 질문들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이런 질문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보기엔 한 영역의 100점보다 전 영역의 80점이 더 가치 있는 시대가 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제품이 살아남는 결정적 변수는 시각화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20점 부족한 전문성은 이미 채울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 AI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고, 협업 도구, 외부 전문가, 기존 템플릿으로도 충분히 메꿀 수 있다. 반대로 한 영역의 100점을 전 영역의 80점으로 풀어내기는 훨씬 어렵다. 그런 디자이너가 시각화 외 영역을 따라가려면 다른 사람이 늘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고, 팀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도는 구조가 된다.
제품 전주기, 어디까지 봐야 하나
디자이너가 제품 위에서 봐야 하는 구간을 나열하면 이렇다.
사업 개발팀과 협업한다. 제품이 풀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시장으로 가는지를 먼저 안다. 이게 안 잡혀 있으면 디자인 의사결정에 근거가 없다.
기획 단계부터 발산과 수렴을 함께한다. 아이디어를 내는 자리에 들어가서, 반대 의견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안을 다시 짜는 과정이다. 이건 화면을 그리기 전에 일어나는 일이고, 디자인 단계라고 부르기 어려운 시점부터 시작된다.
빠른 시각화와 엔지니어 협업을 같이 한다. 디자인 핸드오프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다. 화면 단위가 아니라 컴포넌트 단위로 작업하고, 엔지니어가 이해 가능한 결로 디자인을 풀어낸다.
배포 기준에 맞추어 제품을 만들어 낸다. 성능, 접근성, 다국어, 운영 같은 영역을 함께 본다. 디자인이 화면 위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사용자 환경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까지 고려한다.
배포 이후 모니터링을 이어간다. 출시가 끝이 아니다. 지표로 확인하고, 개선하고, 다시 기획으로 돌아간다.
이 다섯 가지가 어느 정도 위에 있어야 한다. 전부 100점이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건 한 명이 막 빠지지 않고, 옆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이다.
툴과 전문성은 이제 두 번째 질문이다
채용 시장에서 누군가 좋은 디자이너냐고 물으면, 종종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UI를 잘 만드는가, Figma를 잘 다루는가, 코딩을 할 줄 아는가.
하지만 이 질문들은 이제 두 번째 관심사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 사람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다. 다섯 가지 전주기 역할을 한 사람이 도맡을 수 있는지, 그게 첫 번째 질문이 됐다.
훌륭한 한 분야 전문가 디자이너도 분명히 필요하다. 시각화 분야의 천재적인 인재를 두고 그 장점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게 디자이너 역할의 전부여야 하는 시점은 이미 지났다고 본다.
디자인에서 제품으로
디자이너라는 직군의 무게중심이 변하고 있다. 한쪽 깊이에 머무는 일에서, 제품을 가로질러 도는 일로 옮겨가고 있다.
나는 협업할 때 묻는 게 정해져 있다. 이 사람은 어디까지를 보냐. 화면 안에서 끝나는 일을 하는지, 아니면 그 화면이 가야 할 곳까지 같이 보는지.
나는 후자의 동료와 더 일하고 싶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더 많이 등장하길 바란다. 그게 이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