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기의 두 가지 뜻: 나눠 갖기와 덜어 담기

두 반이 한 학기 동안 읽은 책을 세어 봤다. 1반은 500권, 2반은 300권. 총 권수만 보면 1반이 200권이나 더 읽었으니 1반이 책벌레처럼 보인다.

그런데 반 인원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반은 40명이 500권을 읽었고, 2반은 20명이 300권을 읽었다. 인원이 다르면 총 권수만으로는 어느 반이 더 읽었는지 못 가린다. 각각을 인원으로 나눠 한 사람당 권수로 바꿔보자. 1반은 500 나누기 40, 곧 12.5권. 2반은 300 나누기 20, 곧 15권. 나누고 나니 순위가 뒤집힌다. 한 사람으로 치면 2반이 더 읽었다.

여기서 나누기는 단순히 무언가를 똑같이 가르는 셈이 아니었다. 인원이 다른 두 반을 같은 자 위에 세워 공정하게 비교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나누기가 대체 무슨 뜻인지부터 짚어야 한다. 나누기는 뜻이 하나가 아니다.

나누기는 뜻이 둘이다

12 나누기 3은 4다. 셈은 하나인데, 이 식이 답하는 물음은 사실 두 가지다.

첫 번째. 사탕 12개를 세 명이 똑같이 나눠 가진다. 한 명당 몇 개? 4개다. 여기서 3은 나눠 가질 사람 수, 곧 묶음의 개수다. 답 4는 한 명이 받는 몫, 곧 한 묶음의 크기다. 이렇게 몇 묶음으로 나눌지를 미리 정해두고 한 묶음의 크기를 구하는 걸 등분제(partitive division)라고 한다. 똑같이 나눠 갖기다.

두 번째. 사탕 12개를 한 봉지에 3개씩 담는다. 봉지는 몇 개 나오나? 4봉지다. 이번엔 3이 한 봉지의 크기, 곧 한 묶음의 크기다. 답 4는 봉지의 수, 곧 묶음의 개수다. 한 묶음의 크기를 정해두고 몇 묶음이 나오는지를 구하는 걸 포함제(quotative division)라고 한다. 몇 개씩 덜어 담기다.

같은 12 나누기 3 = 4인데, 한쪽에서 4는 한 명당 사탕 개수이고 다른 쪽에서 4는 봉지의 수다. 답으로 나온 숫자는 같지만 그 4가 세상에서 가리키는 것이 다르다. 나눠 갖기냐, 덜어 담기냐. 나누기라는 한 연산 안에 이 두 물음이 같이 들어 있다.

등분제 · 3묶음에 똑같이 나눠 갖기한 묶음에 4개포함제 · 3개씩 덜어 담으면 4묶음1234묶음이 4개
같은 12 나누기 3 = 4이지만, 위(등분제)에서 4는 한 묶음의 크기이고 아래(포함제)에서 4는 묶음의 개수다.

나머지도 두 뜻으로 갈린다. 13개를 4로 나누면 몫 3에 나머지 1이다. 등분제로 읽으면 네 명에게 3개씩 주고 남은 1개, 누구에게도 못 준 사탕이다. 포함제로 읽으면 4개씩 세 봉지를 채우고 남은 1개, 봉지 하나를 못 채운 사탕이다. 같은 나머지 1인데 한쪽은 못 나눠준 몫이고 한쪽은 못 채운 자투리다.

두 뜻이 만나는 곳: 1당 얼마

나눠 갖기와 덜어 담기는 겉보기엔 다른 물음이지만 결국 한 자리에서 만난다. 1을 기준으로 다시 재는 일이다.

등분제는 처음부터 1당 얼마를 묻는다. 12개를 3명에게 나누면 1명당 4개다. 포함제도 뒤집어 보면 1의 이야기다. 3개짜리 봉지를 하나, 둘, 채워가며 12에 닿을 때까지 세는 것이니, 3을 한 단위로 놓고 그 단위가 몇 번 들어가는지를 재는 셈이다.

그래서 a 나누기 b는 한 문장으로 이렇게 읽힌다. b를 1로 봤을 때 a는 얼마인가. 이 읽기가 나누기의 정체다. 그리고 이 정체 덕분에 나누기는 우리가 매일 쓰는 온갖 값으로 모습을 바꾼다.

  • 속도 = 거리 ÷ 시간. 시간을 1로 맞춘 값, 곧 1시간당 간 거리.
  • 평균 = 합계 ÷ 개수. 개수를 1로 맞춘 값, 곧 1개당 몫.
  • 단가 = 가격 ÷ 수량. 1개당 가격.
  • 밀도 = 무게 ÷ 부피. 부피를 1로 맞춘 값.

전부 같은 꼴이다. 무언가를 1당 얼마로 환산한다. 속도도 평균도 단가도 이름만 다르지 하는 일은 똑같다. 기준량을 1로 맞춰 다시 재기. 이게 나누기의 진짜 일이다.

그래서 나누기가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1당 얼마로 맞추는 게 왜 중요하냐면, 그래야 크기가 서로 다른 것들을 공정하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의 두 반으로 돌아가자.

총 권수만 보면 1반(500)이 2반(300)보다 많다. 하지만 두 반의 인원이 다르다.
인원으로 나눠 한 사람당 권수로 맞추면 2반(15권)이 1반(12.5권)보다 많다. 나누는 순간 순위가 뒤집힌다.

총 권수만 놓고 보면 1반이 500으로 2반의 300보다 많다. 그런데 1반은 40명, 2반은 20명이다. 인원이 다른데 총 권수를 나란히 놓는 건, 100미터를 뛴 사람과 30미터를 뛴 사람의 걸음 수를 그냥 비교하는 것과 같다. 각각을 인원으로 나눠 한 사람당 권수로 바꾸면 둘은 비로소 같은 자 위에 선다. 1반은 12.5권, 2반은 15권. 한 사람으로 치면 2반이 더 읽었다.

평균이 하는 일도 정확히 이거다. 사과나무가 많은 과수원과 적은 과수원의 총 수확량을 그냥 비교하면 나무 많은 쪽이 당연히 유리하다. 나무 수로 나눠 한 그루당 수확량으로 맞춰야 공정한 비교가 된다. 나누기는 크기가 제각각인 것들을 1이라는 공통의 자에 세우는 도구다.

무엇으로 나누느냐가 결론을 바꾼다

나누기가 강력한 만큼 함정도 여기 있다. 무엇으로 나누는지, 곧 분모를 뭘로 잡는지가 결론을 통째로 바꾼다.

어떤 반의 시험 평균을 낸다고 하자. 분자는 반 전체 점수 합 3500점으로 같다. 그런데 분모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숫자가 딴판이 된다. 반 정원 40명으로 나누면 87.5점이다. 그런데 그날 시험을 실제로 본 사람은 35명이고, 결석한 5명을 빼고 35명으로 나누면 100점이다. 같은 3500점인데 87.5점과 100점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어느 쪽도 틀린 계산이 아니다. 다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느냐가 다를 뿐이다.

그래서 비율을 볼 때는 분자보다 분모를 먼저 봐야 한다. 분모를 고르는 일은 단순한 계산 선택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공정하다고 볼 것인가를 정하는 선언이다. 분모를 슬쩍 바꾸면 같은 데이터로 정반대 인상을 줄 수 있다. 퍼센트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는 퍼센트와 퍼센트포인트 글에서 더 파고들었다.

0으로는 왜 못 나누나

나누기의 두 뜻을 손에 쥐고 있으면, 오래된 금기 하나가 왜 금기인지도 저절로 풀린다. 0으로는 나눌 수 없다는 규칙이다.

포함제로 물어보자. 사탕 12개를 한 봉지에 0개씩 담으면 몇 봉지가 나오나? 0개씩 담는 봉지는 아무리 만들어도 사탕이 줄지 않는다. 영원히 12에 닿지 못한다. 몇 봉지냐는 물음에 끝나는 답이 없다.

등분제로 물어도 마찬가지다. 12개를 0명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1명당 몇 개인가? 나눠줄 사람이 아예 없으니 1명당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곱셈의 반대로 봐도 같은 결론이다. 12 나누기 3이 4인 건 3 곱하기 4가 12여서다. 그럼 12 나누기 0은 0에 무엇을 곱해야 12가 되느냐를 묻는 것인데, 0에는 무엇을 곱해도 0이라 12가 되는 수가 없다. 답이 될 수 있는 수가 세상에 없다.

그래서 0으로 나누기는 계산을 하다 틀리는 게 아니라, 물음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자리다. 답이 어렵다가 아니라 답이 없다. 나누기가 무슨 뜻인지 알면 이게 규칙을 외운 결과가 아니라 뜻에서 곧장 따라 나온 결론임이 보인다.

정리

나누기는 한 얼굴이 아니다. 몇 묶음으로 똑같이 나눠 한 묶음의 크기를 구하는 나눠 갖기(등분제)와, 한 묶음의 크기를 정해 몇 묶음인지 세는 덜어 담기(포함제). 두 물음은 1당 얼마라는 한 자리에서 만난다. 그리고 그 1당 값이 속도, 평균, 단가, 한 사람당 몫으로 이름을 바꿔 가며, 크기가 제각각인 것들을 같은 자에 세워 공정하게 비교하게 해준다. 그 비교가 정직하려면 무엇으로 나눴는지, 곧 분모부터 봐야 한다.

곱셈과 덧셈이 각각 무엇을 세는 연산이었는지는 그리고는 곱하고 또는은 더한다에서, 곱셈을 덧셈으로 눕히는 로그 이야기는 로그가 곱셈을 덧셈으로 바꾸는 이유에서 다뤘다. 이번 글은 그 사칙연산 이야기에 나누기 한 조각을 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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